01 허니인비가 해외 양봉인들에게 묻다


최근 양봉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역시 사양시럽(사양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이슈가 뜨겁게 타오를 때 대부분의 경우 몇 가지 다른 의견들이 서로의 주장을 펼치며 충돌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양시럽의 경우 계속해서 문제시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싸우는 양상을 크게 띠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측근인 아빠가 양봉업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양봉업계 종사자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일반 양봉가들은 [사양시럽의 꿀 분류]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전문가들 또한 꿀벌의 생태나 국내 천연꿀 시장의 신뢰성 약화를 우려하며 사양시럽의 꿀 분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 벌꿀과 사양시럽(사양꿀)의 차이는 밀원이다. 설탕물(사료)을 꿀벌이 저장한 것이 사양시럽(사양꿀)이다.


해외의 경우 사양시럽이 꿀로 판매되지 않는다는 여러 기사들을 접하면서 실제 해외의 시각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궁금해졌다. 국내에서만 사양시럽이 사양꿀이라는 이름 아래 꿀의 한 종류로 유통되는 것이 사실인지 꼭 알아내야만 했다.


허니인비는 양봉가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몇몇 해외 양봉인들에게 그 의견을 인스타 DM을 통해 질문해보았다.



~ Question ~


"당신의 국가에서 Sugar fed honey(사양꿀)은 어떻게 여겨지고 있나요?"

(실제 대화 내용 첨부)




↑ 독일의 양봉가의 답변 🇩🇪 (@bettysbienen)


"독일에서는 설탕을 꿀에 넣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마지막 꿀 채밀 후에 벌들에게 사료(설탕물)을 공급하여 겨울 동안 생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봄이 되어 남은 설탕물이 벌집 안에 남아있다면 그것을 모두 꺼낸 후에 순수한 꿀로만 모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정리채밀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똑같다. 정리채밀 과정을 거쳐야 사양시럽(사양꿀)이 섞이지 않은 일반 꿀(천연꿀)만 모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양꿀"이라고 부르는 것을 sugarfood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사양꿀은 꿀이 아닙니다. 사양꿀을 꿀로 부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물론 판매 또한 해서는 안됩니다. 유럽 국가에서 수입꿀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그것은 사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꿀에 정보가 적힌 라벨을 붙이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신설된지 몇 달 안되었어요. 정확히 어떤 국가에서 생산된 꿀인지 기재해야만 하죠.)

또한 왜 지역의 꿀을 소비해야하는지 소비자에게 교육하는 많은 캠페인이 있습니다. 당국에서는 아직 로컬마켓의 가짜 꿀을 식별하고 금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애초에 우리에게는 가짜 꿀은 꿀이 아니거든요.

한 국가에서 법이 만들어져 다른 국가들도 그와 관련한 법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정말 이상합니다.

유럽 양봉인들에게는 이것이 짜증나는(성가신) 추가 작업이기도 하네요."

(짜증나는 혹은 성가신 추가 작업이라는 다소 직설적인 단어로 표현하였는데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아시아 지역의 양봉가로서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 일본 큐슈 지방의 양봉가의 답변 🇯🇵


"일본에서 설탕 꿀 판매는 거의 없어요. 물엿과 꿀이 섞인 꿀(가당꿀)이라면 판매되고 있지만 유기농 붐이 있어서 진짜 꿀을 찾는 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양시럽에 대해서는 명칭은 따로 없고 일반 분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설탕을 먹인 꿀이 판매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 캐나다의 양봉가의 답변  🇨🇦


"우리는 꿀벌들이 꿀을 만들 때 설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꽃이 피지 않는 시기에는 설탕물을 공급합니다. 오직 꽃에서 나오는 꽃꿀로 만들어진 꿀을 좋아하죠."




~ Summary ~

사양꿀은 꿀이 아니다



사양시럽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꿀이 아닌 것을 꿀이라 부르는 것에 있다.

참외를 보고 망고라고 할 수 없고, 자두를 보고 복숭아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문제들을 다 차치하고서 바라봐도 애초에 꿀이 아닌 사양시럽을 꿀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는 꿀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도 모순된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왜 사양시럽(사양꿀)을 꿀로 분류하게 되었는가?


아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국민일보 「꿀벌실종 막으려면 사양꿀 유통제한 절실」기사에 대한 반박으로 배포한 설명 자료의 일부분이다. 사양벌꿀이 식품으로 인정된 다음 해부터 꿀벌의 실종이 급증하게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양벌꿀은 국내 양봉 여건 상 밀원이 없는 시기에 불가피하게 생산될 수 밖에 없었고, 꽃꿀로 유통되어 소비자의 불만이 지속 발생하여 해당 꿀을 제도화하여 관리함으로써 소비자가 정확하게 알고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식약처에서 소비자단체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통해 식품유형을 2016년도에 신설(식품공전 개정)하였습니다.

 사양벌꿀은 현재 시장에서 대체 당원, 제과 원료 등으로 유통되는 물량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양벌꿀 유통제한 등에 관하여는 양봉 농가 등 이해관계자와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출처 :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자료 [생산자단체, 관계기관 등과 사양벌꿀 생산·유통 제도 개선 방안을 협의할 계획] 원문 바로가기)

요약하면, 무밀기에 생산이 되는 물질인 '사양시럽'이 '일반 천연꿀'로 둔갑되어 유통되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사양시럽'을 '사양벌꿀'로써 벌꿀의 유형으로 인정하는 법을 신설하였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계속해서 사양시럽의 유통시장이 거대해지면서 당장에 유통 제한을 내리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제도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양시럽의 꿀 둔갑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2022.12. 사양시럽을 일반꿀로 둔갑하여 판매한 업체가 7곳 적발되었다. 원래 가격의 3배 수준으로 판매.)


무밀기 기간에 부산물로서 생산되는 사양시럽을 경제성 있게 다루기 위한 제도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토대 자체에서부터 허점이 있다.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사양시럽은 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에도 무밀기가 있고 특정 시기에는 설탕물 사료를 공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양시럽을 꿀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사양시럽의 꿀 분류는 국내 꿀 시장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01 꿀이 아닌 것을 꿀로 소비하게 되는 소비자들 

02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 관계 약화

03 국내산 꿀의 가치 하락


소비자는 꿀의 품질에 대해 항상 의심하며 불안을 가진 채 구매해야 하고, 좋은 꿀을 생산하는 양봉가들은 꿀의 품질에 대해 언제나 증명해야만 한다. 비정상적인 네이밍으로 인해 양쪽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어 양봉업계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벌집꿀, 꿀젤리... 재밌는 꿀 컨텐츠에 가려진 진실


젊은 세대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꿀의 형태인 벌집꿀도 대부분 사양시럽이 담겨진 벌집이다. 한정적인 기간 안에 채밀을 하는 국내 벌꿀 산업에서 1년 내내 계속해서 생산해야 하는 벌집꿀을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벌집꿀 열풍의 아래에는 그대로 방치된 사양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수한 맛과 향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국내산 천연꿀이 건강하게 소비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이 이야기가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02 양봉에서 가장 주된 업무는 꿀 채밀이 아니라
꿀벌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부모님이 양봉일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꿀 많이 먹을 수 있겠네!'였다. 사실 젊은 세대에게 양봉업이 그리 알려진 바가 없어서 양봉일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질문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는데 어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양봉은 꿀벌이 열심히 모아온 꿀을 빼앗는 일 아니야?"


이 질문을 오프라인에서 받은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후에 인터넷에서 양봉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DM이나 댓글을 통해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양봉업의 윤리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질문인데 이에 대한 대답은 양봉업이 어떤 것인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과정을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찾아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 우리 양봉장 꿀벌들
▲ 우리 양봉장 꿀벌들


우선, 양봉업에서 최우선되는 일은 꿀을 얻는 일이 아니라 꿀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다.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꿀벌들의 꿀을 모조리 다 빼앗아 그들의 식량을 모두 훔쳐간다는 것인데, 만약 단순히 벌통에 꿀이 찰 때마다 꿀을 빼내게 되면 꿀벌은 곧장 먹을 것이 없어 컨디션이 금세 나빠지게 되어 양봉일의 1차적인 목표인 건강한 봉군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꿀벌들을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는 짧아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므로 양봉가에게 즉각적인 손해이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 양봉장 뒷편 이웃 배추꽃밭에 앉은 꿀벌
▲ 양봉장 뒷편 이웃 배추꽃밭에 앉은 꿀벌


우리나라 일반 꿀(천연꿀) 생산을 기준으로 보면, 6월을 시작으로 그 다음 해까지 1년 동안 꿀벌을 건강하게 키우는 작업(벌통 내 꿀벌 개체수를 늘리며 꿀벌의 세력을 키우는 일)을 하고 다음 해 5월~6월 특정 기간 동안만 채밀(꿀을 빼내는 작업)을 한다. 우리나라 기준 5~6월에 꽃과 나무에서 꿀이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실제 채밀 기간은 모두 합쳐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채밀 과정에 있어서도 양봉가마다 구체적인 채밀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전체를 다 빼내는 경우, 일부 남겨두는 경우, 양봉장의 벌통 중 건강한 벌통만 선별해내 채밀을 하는 경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채밀 기간을 제외한 1년은 모두 꿀벌 건강을 관리하는 일에 매진한다. 한여름에는 기온이 극단적으로 높고 주변의 나무와 꽃에서 꿀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다 말벌의 공격까지 심해지기 때문에 꿀벌 스스로 생존하기가 어려워진다. 겨울에도 낮은 기온으로 생존활동이 힘들어지고 꽃과 나무가 없어 꿀벌이 자체적으로 먹이 수급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꿀벌 건강의 위협이 되는 상황 속에서 양봉가는 건강하고 튼튼한 봉군을 유지하기 위해 시기마다 맞딱드리게 되는 과업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대처하며 그들의 건강을 유지한다.


꿀벌 건강에 가장 촉각을 세우는 집단이 양봉가인만큼 꿀벌 관련 이슈가 생기면 정부 부처에서도 양봉가에게 전문적인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위르겐 타우츠(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저자)와 양봉가는 [벌꿀 공장]이라는 책을 함께 저술하여 양봉과 꿀벌의 공생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양봉업은 꿀벌의 생태에 인간이 개입하여 그들의 봉군을 튼튼하게 유지하며 꿀을 얻어내는 것이다. 인간이 일구어 온 모든 산업이 그렇듯, 이 산업 또한 어떻게 더 윤리적이고 선한 방식으로 산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할 의무가 있다. 양봉업계는 꿀벌의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들의 생태와 건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더 나은 방식이 무엇일지 연구하며 매일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언급한 질문에 '아니오'라고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꿀벌의 생존은 곧 양봉가의 생존과 같고 이 밀접한 관계 안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